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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나눔

다니엘기도회 간증요약[하나님의 영광(고린도후서4:3-6)]- 김명선 간사(11월 20일)

2018/11/21

 

■다니엘기도회 간증요약[하나님의 영광(고린도후서4:3-6)]- 김명선 간사(11월 20일)

 

 

1. 하나님을 위해 예배하고 봉사하면 나에게 영광이 온다고 생각한 때가 있습니다. 

 

- 오늘, 제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찬양인도자로 성장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단어를 궁금해 했습니다. 제가 처음 영광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던 시기는 고3 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저의 아버지는 도박중독자였습니다. 집안을 돌보지 않으셨고, 집에 자주 오지도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구 공장, 스웨터 공장, 우유 배달, 떡볶이 장사 등 궂은일을 하면서 저희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저는 달동네에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 어머니가 재활용코너에서 주어온 옷을 입고 자란 까맣게 못생긴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예뻐진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반장, 전교부회장 등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신나게 지냈지만 친구들은 제가 어디에 살고 어떻게 사는지 몰랐습니다. 

- 충분히 불쌍하고 탈선할 수 있는 저를 보호해준 안전한 울타리는 교회였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는 지하실 교회였습니다. 저의 집이 있던 달동네까지 차량운행을 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생활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고3때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믿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하루 종일 봉사했습니다. 새벽예배도 가끔 가는 교회생활 열심히 하는 고3 학생이었습니다. 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2. 대학을 실패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혼선이 왔습니다. 

 

-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학원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고 수능을 봤습니다. 적당히 성적이 나왔지만, 제가 쓴 학교마다 떨어졌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교회 안다니고 대충 공부한 아이들도 붙는데, 나는 왜 이러지?’ 어떻게 주님이 이러실 수 있지?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고3이라고 교회 나오지 않던 아이는 붙었는데, 나는 왜 이러지?’ 또 하나의 감정은 수치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머리를 떨구었습니다. 한 편으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킨 것 같았습니다.

- 가출을 했고, 한 장로님이 저에게 추천해 주신 강남금식기도원에 갔습니다. 이틀 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수능을 세 번 봐서 대학을 갔습니다. 제가 들어간 대학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주님은 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대학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찬양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 대학의 신앙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알수록 더욱 주님을 알고 싶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제가 배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비록 육신의 아버지는 도와주지 않았지만 나의 하나님은 나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시는 분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 등록금을 낼 때마다 항상 부족했는데, 주님이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4년을 보내고, 캠퍼스 자비량 선교사를 지원했습니다. 돈을 벌지 않고 사역하는 것에 대해 집안에서는 서운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전도단의 대학 워십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찬양사역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불안정한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모난 부분을 둥글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4. 남편을 만나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따뜻한 사랑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 27살에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속으로는 좋아했지만 끌려가는 척하며 결혼을 했습니다. 남동생의 표현에 따르면 남편은 ‘누나가 이전에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저를 존귀하게 여겨 주었고, 온유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가정을 돌보며 저를 많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 느꼈던 저는 안정적인 곳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정기적인 월급이 감사했고, 9평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사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결혼 이후 사역이 잘 풀렸습니다. 

 

5. 사역을 쉬면서 하나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시선’이라는 곡을 쓰게 되었습니다.

 

- ‘시선’이라는 곡은 제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 쓴 곡입니다. 이 안정감 때문에 주님에게 죄스러움을 갖고 있던 어느 날, 예레미야를 묵상할 때 주신 곡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전과 같은 열정이 없어진 것 같아요. 하나님, 이런 저도 필요하세요?’ 라고 물을 때에 ‘명선아, 어떤 상황이든지 다른 사람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마라. 기도하는 것은 너이지만 일하는 것은 나란다.’라는 음성을 듣고, 큐티 노트에 시를 쓴 것이 ‘시선’입니다.

- 이 곡을 어떻게 썼는지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사역자의 길이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첫째아이, 둘째아이를 낳고 개인 찬양집을 내게 되었는데, 낙헌제라는 이름으로 발매를 했습니다. 낙헌제는 예배를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드리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2012년 8월 20일부터 발매하고, 기독교 콘서트에도 나가고, 라디오방송도 나가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너무 기침을 많이 해서, 응급실에 갔다가 2박 3일 검사를 받고 나온 병명이 말기암이었습니다. 

 

6. 남편을 살리기 위한 영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남편은 술담배 하지 않고, 가족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교회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 김밥 사러 간다며 제가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병실에서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남편과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좋았던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갔습니다. 제가 아름다운 영화의 여주인공 같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사람을 위해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저에게 기회를 주셔야죠.’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영화의 타이틀처럼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은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나사로에게 모시고 왔을 때에 나사로가 죽은 지 사흘이 되었던 시기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 죽은 지 사흘이 되어 냄새가 납니다.’라며 이미 늦어서 예수님이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하지 않았니?’ 라고 하신 말씀이 제가 들은 음성과 같았습니다. 

- 남편 간병을 ‘영광 프로젝트’라고 명하고 남편의 병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간에 13cm 암이 있었고, 폐와 복막에 암이 퍼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적합한 항암제가 없고, 일반적인 항암제를 투여해도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병원에서는 말했습니다. 

- 저는 영광 프로젝트를 하면서 ‘믿음은 약속된 말씀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에게는 약속된 말씀이 있었잖아요. 남편은 전라도에서 요양하면서 투병생활을 했고, 저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을 돌보고 섬기던 사역을 계속하면서 지냈습니다. 일 주일에 한두 번 남편을 만났습니다. 2015년 11월에 암이 발견되고 다음 해 5월까지 남편은 일기를 쓰며 비교적 건강하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여러 가지 감사일기도 쓰고, 하나님 앞에 내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6월부터 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통증 때문에 음식을 잘 먹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배를 열어 보니 암들이 장기를 다 누르고 있습니다. 대장을 자르고, 암을 긁어내고 항암제를 뿌리고 다시 봉합을 했습니다. 

- 남편은 일기 쓸 기력도 없어졌습니다. 기도 후원자가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약 500명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믿음이 있었고, 은혜와 감사로 보냈지만 큰 차도가 없었습니다. 6월 8일 병원에 들어간 후, 7월 17일 남편이 교회에 가고 싶다고 해서 휠체어를 타고 청년부 예배에 가서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예배에 올 때마다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없으면 이것은 다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껍데기를 버리십시오. 몸만 와서 앉아 있다고, 찬양을 따라 부른다고, 그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남편이 기도제목을 냈습니다. 물도 먹고, 죽도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 8월에 병원에서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호스피스로 가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주님이 일하시면 금방이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 안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제 앞에는 몸무게 40kg도 안 되는 남편이 누워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실 때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시다면 저는 믿음이 부족하지 않다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생기 한번 불어넣어 이 사람이 벌떡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은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도 살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도를 창밖에서 지켜보시던 전도사님이 ‘남편이 자매님 때문에 하나님께 갈 준비를 못하시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전도사님은 ‘생명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우리들은 그 흐름을 그저 지켜보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실 때,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다 감당했으면 ‘아들아 딸아, 이제 와서 내 앞에서 쉬어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이 ‘저는 아직도 주님 나라를 위해 할 일이 이렇게도 많고,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어립니다.’라는 그 어떤 것도 변명입니다. 주님이 판단하시기에 ‘내가 맡긴 일을 다 했구나.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이제 내 옆에 와서 쉬어라.’ 하시면 ‘네’ 하고 가면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누워있는 남편에게 ‘천국은 목마름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곳이래. 천국은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이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듣기 싫다고 합니다. 남편은 주님이 살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날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놓고, 많은 중보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남편의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중에 ‘하나님 찬양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제 안에 평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며칠 뒤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남편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힘도 없는 사람이 침대에 일어나 앉아 아이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또 며칠 뒤에 큰 아이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녹음을 했습니다. ‘호연아, 아빠는 호연이를 정말 사랑했어. 하나님은 호연이를 너무 사랑하셔. 호연이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돼.’ 그리고 며칠 후 2016년 8월 20일에 남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 장례식은 너무 슬프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 청년들이 와서 ‘전도사님, 이제 저는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집니다.’ ‘껍데기를 버리라.’는 말이 유언으로 남았습니다.’라며 저를 안아 주었습니다. 

 

7.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 저는 이전까지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것을 잘해서, 어떤 위치에 올라서, 박수를 받을 상황이어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응답으로 공부를 잘하게 되어서, 취직을 잘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위해 기도했더니 남편이 회복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면 저는 실패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했던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수능을 실패했던 배신감과 수치심이 그 상황입니다. 그러나 20대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들이 박수칠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른 척하고 무시한다고 하나님의 영광이 작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신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고린도후서 4:3-4에서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셨는데, 어떤 사람은 보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지 못하는데, 그 어두워져 있는 사람들,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믿고 있는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고 질문을 받았으면 합니다. 고난 속에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를 보며 궁금해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위치에 올라가서 영광을 돌리겠다는 목표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상의 삶을 포기합니다. 고3이 되어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떤 회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것들 때문에 관계를 포기하고 헌신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만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일상 안에서 ‘여전히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춰지고, 그 빛이 비춰지는 것을 통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8.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 나사로가 죽었다가 특별한 은총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받은 영광이 무엇인지 아세요? 예수님을 싫어하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받은 영광은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십자가의 영광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는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너희가 목숨을 구하려고 하면 잃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영광의 삶은 누리고, 박수 받고, 칭찬 받는 삶이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죽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이 허락한 사람들을 위해 죽기로 결정하는 것,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헌신의 자리로 가는 것, 그것이 가족일수도, 친구일수도, 허락된 질병일수도, 어떤 것이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원하십니까? 그것은 십자가가 주어져도 믿음으로 걷는 삶입니다. 잘 사는 것보다 주님 한 분만으로도 만족하게 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영광을 추구하는 삶,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인 줄 믿습니다. 

 

9.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여전히 함께 계십니다. 

 

- 이것은 ‘반짝이의 모험’이라는 책입니다. 반짝이는 꾀꼬리입니다. 꾀꼬리는 햇빛을 보며 찬양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매일 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쳐서 햇빛이 안 보이는 것을 엄마에게 불평했습니다. 엄마가 저 구름 위로 올라가 보라고 해서, 가보니 구름 위에는 여전히 해님이 있었습니다. 그 후 반짝이는 비가 내려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는 언젠가 그쳐. 그리고 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우리는 고난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고난이 긴 것처럼 느껴지고 너무 깊은 것처럼 느껴져도 고난이 있다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이 짧으신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삶을 돌보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10.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 제가 청년들에게 항상 천국을 바라보며 살라고 가르쳤는데, 제가 호스피스에 있어 보니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지금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무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제 신앙은 남편이 살아있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보다 더 좋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에 있을 때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생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이 영생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삶,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구하는 삶, 그런 영생의 삶을 우리가 누리길 원합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영생의 삶을 구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 착한 행실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11.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고 말하면서, 나의 소원을 말하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어떤 좋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광은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이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빛을 보여주고, 우리가 가진 소망의 이유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 그런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구한다면서 내 욕심을 구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구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해 달라고 다 함께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12. 결어 및 기도

 

- ‘나는 왜 간증이 없지?’ 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가르쳐 주는 간증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곧 행하시는 일인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통하여 어떤 것을 성취하고, 이루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죠.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영광의 일부분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은, 간사님이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픔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인데요. 결국, 우리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가 우리의 삶에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 복음의 광채가 비추어질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제 찬양을 부르며 우리 영혼에 새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영광 보기를 원합니다. 주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옵소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그 삶이 얼마나 추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끊임없이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일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가 내게 비춤으로 말미암아 내가 어둠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내 영혼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기쁨으로 모든 일에 오래 참음과 견딤으로 사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힘을 얻게 도와주시고, 내 영혼이 어디 있든지 복음의 광채를 드러내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과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 임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좁은 길로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마지못해 걷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주님의 영광이 임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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